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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목사·신부, ‘잡설’로 세상을 관통하다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도법·김민웅·김인국 지음 《잡설》

세상을 향한 사자후, 잡설

 스님·목사·신부, 한적한 산사와 예배당·수도원에 있어야 제격인 사람들인 모여 때 아닌 잡설을 펼친다. 잡설(雜說)이라고 해서 그냥 잡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라는 흔한 단어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세상사, 즉 우리 시대의 꿰뚫어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고 해야 옳은 말들이다. 글로 따지면 일필휘지(一筆揮之)에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잡설은 잡설이되, 그야말로 경구(警句)가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생명평화운동을 펼쳤을 뿐 아니라 불교 갱신에 앞장서온 ‘도법 스님’과 거대 자본은 물론 부당한 권력과의 싸움을 해온 ‘김인국 신부’, 목회자이자 언론학자로 줄기차게 시대정신을 외쳐온 ‘김민웅 목사’의 대담은 그렇게 잡설이 아닌 거친 세상을 향한 사자후(獅子吼)다.

“이 세 분들의 대화는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서로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세 종교인들의 품은 한없이 넓었고 상대의 종교에 대해 아무런 편견도, 선입관도 없는 무애(无涯)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종교가 이런 식으로 마음을 터놓고 현실을 염려하고 갈 길을 밝혀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지요.

나눈 이야기들은 사회적 현실, 교육, 정치, 경제 그리고 종교 등 다양했습니다.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대화가 전개되면서 더욱 깊어졌습니다. 더욱이 현실의 종교가 보이는 모순과 문제를 직시하는 과정에서 세 분은 종교가 과연 존재 가치가 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수준까지 그 논의의 핵심을 짚어 나갔습니다. 이건 고담준론(高談峻論)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적 기초 없는 허공에 뜬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습니다”(‘잡설’이 아니라 ‘경구’가 되는 까닭 │ 한종호 <꽃자리> 출판사 대표, 전 <기독교사상> 주간).

자살과 자본의 함수를 잡설로 풀다

자살로 시작된 잡설은 이내 ‘죽음 불감증’에 빠진 한국 사회의 근원적 문제로 진입한다. 어린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죽음 대열에 내몰리고 있지만 세상을 바꾸겠다고 큰 소리쳤던 사람들은 ‘나 몰라라’ 한다. 생명에 대한 외경을 잃어버린 시대는 징후는 암울하기만 하다. 결국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정부도,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자본가도 노동자도 해결하지 못하는 자살 행렬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건 국민뿐이다. 우리의 아들·딸이 죽어가고 있음을 인식하자는 말이다.

“나 같이 무식한 사람이 알기로는 지금까지 죽어라 싸웠는데 죽음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고, 사회적으로 잊혀져가고, 투쟁력은 훨씬 약화되는 상황인데 다시 강력히 투쟁해서 해답을 찾자? 이게 대체 뭔 대책이 되겠는가,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거 같아 갑갑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뭔가 새로운 관점과 모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노동자가 죽었다는 관점이 아니고, 국민의 아들딸이랄까, 시민의 아들딸이랄까, 우리의 아들딸이 죽어가고 있다는 관점으로 생각을 해야 풀릴 일입니다. 국민의 아들딸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정부도,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자본가도 노동자도 해결을 못해서 죽음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현재는 이 상황인 것 같아요. 국민의 아들딸이라면 마지막에 나설 것은 결국 국민이란 생각이 듭니다”(도법 스님).

한편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 ‘자본’에 대한 스님·신부·목사의 잡설은 실로 거침없다. 거듭 자본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지만 후안무치한 자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수많은 폭로가 이어지고 있지만 해답을 찾지 못한다. 해답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지성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한다. 더 큰 문제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의무교육, 즉 학교마저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쟁만능의 시장에 내몰린 학교는 이제 지배 이데올로기를 모종하기 위한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단적인 예가 MB 정권이다. 자본과 영합한 권력, 특히 MB 정권은 자본을 파트너로 삼아, 아니 당당하게 보호자가 되어 생명의 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었다. 기독교와 가톨릭 교회의 처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의무교육이어야 하는데 학교가 그 역할을 안 하지요. 사실 학교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모종하기 위해 생겨났어요.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못한 사회의 학교일수록 폭력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가르치지 않지요. 일제 강점기의 ‘국민학교’를 생각해보면 금방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 일을 조중동이 해줄 리도 만무하고. 교육, 언론이 안 하면 종교라도 해야지요. 그런데 교회가 현실을 언급하면 강단에서 왜 정치선동을 하냐고 싫어해요”(김인국 신부).

안철수, 왕기(王氣)가 없다?

 스님·신부·목사의 잡설은 돌고 돌아 정치와 대선 이야기로 옮아간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분석이 그 중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 사람은 대선의 주인공을 꿈꾼다면 먼저 ‘스스로 자기 고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386세대로 힘들고 어려운 역사적 경험은 했지만, 개인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사회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을 져야한다. 그 고백은 안철수가 내놓겠다는 거액의 재산보다 더 값지게 평가를 받을 것이다.

“사회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을 져야할 시기에 그 고통에 참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토로는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그 시대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고통당한 사람들이 건강한 주체로 인정받고, 평가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적극 발언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이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말까지 해야 해요. 왜냐하면 도처에서 우리 사회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피눈물 나는 투쟁과 어려움을 겪었고, 그로 인해 살 길조차 없어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요. 노동운동을 한 사람들 가운데 나이가 들어서 한 달에 10몇 만원 연금을 받으며 살길 막막해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거든요. 이러한 현실을 아파하고, 그들의 몫까지 감당하겠다는 이런 고백과 토로, 그리고 시대적 아픔에 대한 고뇌를 정리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김민웅 목사).

 스님·신부·목사는 천기누설도 불사한다. 안철수에게 왕기(王氣)가 없다는 것이다. 외유내강의 사람이지만 유약하고 단호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약점을 지녔기 때문이다. 결국 시대의 요청인 단일화를 어떻게든 이뤄내야 한다고 세 사람을 입을 모은다. 물론 단일화가 능사는 아니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단일화만이 연말 대선을 정권교체의 현장으로 만들 수 있다. 단일화도 그냥 단일화는 무의미하다. “단일화하는 과정 자체의 품격”을 담보한, 즉 단일화 과정 자체에서 두 사람의 실력을 국민들을 보고 싶어 한다. 지엄한 국민의 지엄의 명령은 단일화라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너나 잘 하세요” 질타 듣는 종교를 향한 고언

 스님·신부·목사는 스스로가 자리를 펴고 있는 ‘종교’ 영역에 대해서 더 엄격한 잡설을 뿜어냈다.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세 사람은 한국의 종교 현실을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미 결론을 내렸다고 중지를 모은다. “너나 잘 하세요.” 기독교이건, 가톨릭이건, 불교이건, 이제 “누가 누구를 대속하고 구원한다는 말이냐”는 것이다. 종교가 세상을 근심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고 근심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종교와 관련한 대화에는 종교학자 오강남 박사와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가 동참해 교회와 역사 현실에 대한 이야기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김기석 목사는 종교가 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회복을 강조한다.

“그러나 끈덕지게 살아야 했던 민중들에게는 ‘이 고통 속에서 살아남자. 그리고 이 속에 새들이 날아오게도 하자’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새로운 나라를 상상하게 만들었어요. 그 꿈에 공감되었던 사람들이 아주 소수였지만 말입니다. 교회에서 위로를 구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이 제게 별로 없어요. 교회 안에는 표층적 종교에 침윤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아를 넘어서는 삶의 상상이 잘 안 됩니다. 표층 종교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겨자 풀 천국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저희한테는 상상력을 회복시켜주는 일들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상상력이란 전혀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이잖아요. 이 능력이 다 깨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시대의 종교에 가장 필요한 것이 상상력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가 ‘삶은 이렇게 구성되는 거야’라고 할 때 ‘나는 이렇게 살래’라고 말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오는 것이 희망의 징조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김기석 목사).

그런가 하면 오강남 박사는 삶으로 살아내는 신앙을 추구할 것을 강조한다.

“21세기의 종교는 심층적이지 않으면 의의가 없어요. 젊은이들이 독선적이고 파시즘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심층 종교가 주는 시원함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제가 원숭이 잡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요. 구멍에 손을 집어넣은 원숭이가 손을 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질 못합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태를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꼼짝을 못하는데 종교 지도자들이 손을 펴라는 말을 못하는 거예요. 펴기만 하면 시원함이 있는데 말이죠. 어거스틴은 회심하기 전까지 별의 별 것 다 해봤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당신 속에서 쉼을 얻기까지는 쉼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종교가 그 시원함을 맛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그건 제도적으로는 안 됩니다. 조그만 운동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죠”(오강남 박사).

지금은 세상을 변화시킬 잡설에 빠질 시간

 스님·신부·목사의 잡설은, 잡설이되 세상을 변화시키는 잡설이다.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정치와 경제, 사회 등 우리 사회를 일신하는 고갱이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색창연한 고담준론만을 되뇐, 뒷짐 지고 세상만 질타하는 종교인들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와 폭력 앞에 온몸으로 맞서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잡설은 실상 우리 사회를 후려치는 죽비소리에 다름 아니다. 일상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오늘을 영원에 비춰 볼 수 있는 스님·신부·목사의 잡설에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한국 불교는 깨달음 때문에 문제예요. 성철 스님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출가수행을 왜 합니까. 깨닫기 위해서죠. 깨닫기 위해서 선방에 들어앉아서 현장 사람들의 표정에 곁눈질하지 않고, 현장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깨달음만을 찾아서 심산유곡에 들어가 일생 동안 가부좌 틀고 앉아 있는 거예요. 현재 선방에서 전문 수행자라는 분들이 비구(比丘)와 비구니(比丘尼)를 합치면 3000명 가까이 될 거예요. 그분들이 아무 것도 돌보지 않고 오로지 깨달음만을 찾습니다. 저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국 불교는 깨달음병 때문에 문제’라고 말을 합니다. - 도법 스님

우리가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여기에 담고 싶어 하는 이 시대의 욕망이나 요구는 뭐라 얘기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 지도그룹 내지 지배그룹이 보여줘야 할 것을 보여주지 못한 그 자리에 안철수 현상이 들어선 거잖아요. 노무현은 ‘국민이 대통령이다’라고 했는데 안철수는 ‘국민이 스승이다’라고 했거든요. 보고 배우겠다는 것인데, 좋은 레토릭이긴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자면 지금 우리 국민 모두는 스승으로 대접받는 것보다는 존중받고 살아야 될 소중한 인생에 대해 더 절박하지 않을까요? 안철수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 담고 있는 가치에서 우리가 취해야 될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안철수 현상 자체가 새로운 시대의 표징’이라고 간단히 정리하고 말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그게 안철수 현상을 바라보는 저의 고민입니다. - 김민웅 목사

저는 개인적으로는 정의구현사제단 총무를 하기 때문에 요만큼이라도 시민다운 얘기를 할 여지가 좀 있어요. 가톨릭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습니까? 사회 정의를 위한 헌신을 문헌적으로 요구를 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삼성 때 나섰다고 불이익을 당하고, 광우병 쇠고기 수입 기도회를 한다고 제제가 날라 와요. 사제들과 교우들이 하는 운동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 못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을 당하죠. 좀 다른 이야기지만 민주화를 위한 사제단의 투신은 선교에도 퍽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습니다. 사회학자들은 흔히 한국천주교회의 아름다운 성장 요인으로 민주화를 위한 사회참여를 꼽습니다. 그 선두에 사제단이 있었음은 자명한 사실인데 주교들은 그 점을 외면하고 사제단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열매는 가져가면서 농부의 수고는 무시하는 거지요. - 김인국 신부

꽃자리 / 232쪽 / A5 / 1만 3000원

출처 : 출판사 서평

2012-11-07 / 4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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